예술이 배달왔어요!
ARTLETTER Vol.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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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유명한 카페 장면. 고흐가 집중한 건 인물이 아니라 분위기다. 노란 카페 조명, 푸른 밤하늘, 별빛과 거리의 원근. 카페는 사교의 공간이라기보다 도시 속 고독을 감싸는 빛의 장소처럼 보인다.
 
💝 설 연휴가 시작됐어요. 예전엔 명절이면 집안 가득 사람들로 북적이고, 하루 종일 상 차리고 인사드리느라 정신없던 기억이 먼저 떠오르죠.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풍경이 익숙해졌어요. 가족끼리 짧게 여행을 가거나, 근교로 드라이브 나가 예쁜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며 쉬곤 하죠.
 
“우리 커피 마실까?”
이 말 한마디가 은근히 많은 걸 해결해주잖아요. 어색한 공기도 풀어주고, 오랜만에 만난 사이의 거리를 조금 좁혀주기도 하고요. ☕️
 
사실 커피는 참 묘한 존재예요. 아침을 깨우는 일상의 연료이면서, 누군가를 만나게 만드는 약속의 이유이기도 하죠. 혼자 마실 땐 사적인 시간의 상징이고, 함께 마실 땐 관계의 시작이 되고요. 그래서인지 미술 속에서도 커피는 자주 등장해요.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 있기에 커피는 늘 그 시대의 공기와 함께 그려졌습니다.
 
이번 아트레터에서는 ‘커피’가 만들어낸 장면들을 따라가 보려고 해요. 사람을 모으고, 생각을 멈추게 하고, 또 다시 움직이게 한 매개로서의 커피 이야기.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마시고 있는 한 잔이 있다면 좋겠네요. 🙂 이번 연휴, 잠시 속도를 늦추고 커피가 만들어낸 예술 속 장면들을 함께 들여다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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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 《Coffee Pot》
커피포트라 불린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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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de Toulouse-Lautrec, Coffee Pot, 1884, private collection.
 
19세기 말 파리의 밤을 가장 잘 그린 화가를 꼽으라면, 아마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을 빼놓을 수 없을 거예요. 물랑루즈의 포스터, 화려한 무희들, 압생트 잔이 부딪히는 소리… 🍸 그런데 그가 그린 건 꼭 무대 위 스타들만은 아니었어요.
 
1884년에 제작된 《Coffee Pot》은 조금 다른 장면을 보여줍니다. 화려한 조명도, 붉은 커튼도 없어요. 대신 짧은 다리로 지탱한 묵직한 커피포트 하나가 화면을 채우고 있죠. 어쩐지 단단하고 고집스러워 보이는 실루엣입니다.
 
이게 왜 흥미로울까요?
로트렉은 10대 시절 두 번의 골절 사고로 다리 성장이 멈췄고, 키는 성인 남성 평균보다 훨씬 작았어요.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바로 ‘커피포트’였죠. 둥글고 낮은 몸체 때문이었대요.
 
보통이라면 상처가 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는 그 별명을 불쾌해하기보다는, 오히려 작품 속에 커피포트를 등장시켰습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요.
 
“그래, 나를 그렇게 부른다고? 그럼 내가 직접 그려줄게.”
 
화려한 밤의 화가가 아니라, 자신의 신체와 정체성을 조용히 응시하는 젊은 작가의 초상처럼 느껴집니다. 이 작은 포트는 어쩌면 로트렉의 자존감 선언이었을지도 몰라요.
 
  • 자기 자신을 유머로 받아들이는 태도
  • 사회의 시선을 비틀어 다시 되돌려주는 방식
  • 밤의 술 대신, 낮의 커피처럼 또 다른 일상의 리듬 ☀️
 
어쩌면 그는 세상의 시선을 피하기보다, 그 시선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여 자기 방식으로 다시 정의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 아만보 타임
  • 로트렉에게 커피포트는 자기 자신을 비유한 오브제였다.
  • 화려한 밤의 화가로 기억되지만, 이 시기의 그는 오히려 자기 몸과 존재를 분석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 낮고 둥근 형태의 포트는 그의 신체적 특징을 닮았지만, 동시에 단단하고 중심이 낮은 안정감을 지닌 구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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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뷔야르 – 《Seated Woman: Cup of Coffee》
커피 한 잔, 그리고 거의 배경이 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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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ouard Vuillard, Seated woman: cup of coffee, 1893 © ADAGP, Paris and London 2003
 
19세기 말 파리. 화가들이 햇빛을 따라 야외로 나가 그림을 그리던 시절, 한 무리의 젊은 화가들은 오히려 집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을 부르는 단어는 ‘나비(Nabis)’, 히브리어로 ‘예언자’라는 뜻이죠.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에두아르 뷔야르입니다.
 
작품 속 여인은 거창한 포즈를 취하지 않아요. 빗자루는 문 옆에 기대어 있고, 그녀는 무릎 위에 손을 얹은 채 잠시 쉬고 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조용히 놓인 커피 한 잔. 이 장면, 너무 평범하지 않나요?
 
그런데 뷔야르는 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요. ✨ 이 여인은 사실 그의 여동생 마리입니다. 홀어머니와 함께 재봉 일을 하던 집에서 자란 뷔야르는, 여성들의 실내 노동과 휴식의 장면을 아주 가까이서 보며 자랐어요. 그의 그림 속 인물은 방 안의 가구, 벽지, 패브릭과 거의 구분되지 않습니다.
 
  • 드레스의 주름은 벽지의 꽃무늬와 이어지고
  • 얼굴의 그림자는 테이블보와 같은 색을 띠고
  • 빗자루조차 벽 패턴의 일부처럼 보이죠
 
여인은 방 안에 “앉아 있는 존재”라기보다, 방과 함께 숨 쉬는 일부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에 또렷하게 남는 것이 있어요. 화면 한쪽에 살짝 잘려 들어온 파란색과 흰색 커피잔. ☕️ 이 작은 오브제만이 또렷한 색을 유지하며 현실을 붙잡고 있어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요.
 
“이건 실제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패턴과 감정, 내면이 화면을 채우는 동안 커피잔은 그 순간을 현재에 고정합니다.
 
카페에 앉아 잠시 멍하니 있을 때 있죠? 딱히 특별한 일은 없지만, 그 시간이 유난히 또렷하게 남는 순간. 뷔야르는 그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을 가장 진짜 같은 시간으로 그려냈습니다.
👀 아만보 타임
  • 나비파 화가들은 빛보다 ‘패턴’과 ‘감정’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 뷔야르는 인물을 독립된 주인공으로 그리기보다, 공간과 감정을 공유하는 존재로 표현했다.
  • 이 그림 속 커피는 사교의 상징이 아니라, 조용한 내면의 쉼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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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 《Woman with a Coffeepot》
커피도, 사람도, 결국은 ‘구·원기둥·원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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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Cézanne, Woman with a Coffee Pot, 1895, Musée d’Orsay, Paris, France.
 
따뜻한 라떼 한 잔이 놓인 식탁을 상상하면, 보통은 포근한 장면이 떠오르죠. 그런데 폴 세잔의 작품은 전혀 다릅니다. 여인은 꼿꼿하게 앉아 있고, 표정은 거의 읽히지 않아요. 손은 단단히 모여 있고, 커피포트와 컵은 정물처럼 놓여 있습니다.
 
이 장면에는 온기가 거의 없어요. 오히려 실험실처럼 차갑고 분석적인 분위기입니다. 🧊 세잔은 자연을 “원기둥, 구, 원뿔”로 다루고 싶다고 말했죠. 이 그림에서 그는 그 철학을 사람에게까지 적용합니다.
 
  • 얼굴은 평면처럼 단단하고
  • 팔과 몸통은 구조물처럼 단순화되고
  • 커피포트와 컵은 거의 기하학적 덩어리처럼 보입니다.
 
테이블을 보세요. 물건보다 더 높은 각도로 기울어져 있어요. 원근법이 자연스럽지 않죠. 이 낯선 각도는 훗날 등장할 입체주의의 실험을 예고합니다.
 
컵의 우윳빛 흰색, 은빛 스푼, 금속성 커피포트는 두텁게 발린 물감 덕분에 물질감은 생생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친밀함은 느껴지지 않아요. 여인은 방 안의 사물과 거의 동일한 존재처럼 서 있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 커피포트 옆에 놓인 또 하나의 구조물처럼 말이죠.
👀 아만보 타임
  • 세잔에게 커피는 사교의 매개가 아니라, ‘형태 연구’의 도구였다.
  • 한 화면 안에서 서로 다른 시점을 섞는 실험은 이후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로 이어진다.
  • 과일 정물에서 사과를 구(球)로 다루던 세잔은, 사람과 커피포트까지 같은 구조 안에 넣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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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 《Laurette with a Cup of Coffee》
오늘의 메뉴: 고요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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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Matisse, Laurette’s Head with a Coffee Cup, 1917, Kunstmuseum Solothurn, Solothurn, Switzerland.
 
강렬한 빨강의 방, 꽃과 과일이 가득한 테이블. 우리가 떠올리는 앙리 마티스의 이미지는 보통 이런 장면이죠. 하지만 이 작품은 조금 달라요.
 
소파에 느슨하게 몸을 기대고 있는 모델 로레트. 고개 옆에는 가득 담긴 커피 한 잔이 놓여 있고, 시선은 어딘가 멀리 가 있습니다. 이 장면은 화려하기보다 조용하고, 장식적이기보다 사적인 순간에 가까워요. 🌿
 
마티스의 초기 작품들이 강렬한 색채와 장식성을 자랑했다면, 이 그림은 훨씬 절제된 팔레트를 사용합니다.
 
  • 블랙과 화이트
  • 부드러운 갈색과 흙빛
  • 과장되지 않은 음영
 
1차 세계대전 시기의 유럽. 마티스는 화려함 대신 차분함과 사색으로 화면을 채웠습니다.
 
그는 늘 색으로 공간을 만들던 화가였어요. 《Harmony in Red》에서처럼 방 전체를 붉게 물들여 하나의 세계를 만들던 그가, 여기서는 색을 낮추고 감정을 조용히 눌러 담았죠.
 
이 작품 속 커피는 카페의 소음과는 거리가 멉니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아니라, 생각이 깊어지는 시간의 동반자처럼 놓여 있어요. 느슨한 붓질과 단순화된 형태는 이 장면을 하나의 ‘명상’처럼 보이게 합니다. 커피는 여전히 따뜻하지만, 그 온기는 밖이 아니라 안쪽, 내면으로 향하고 있는 듯해요.
 
설 연휴, 북적이는 카페 한켠에서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마티스의 그림처럼, 그저 기대어 앉아 커피를 곁에 둔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어쩌면 그게 가장 깊은 휴식일지도 몰라요.
👀 아만보 타임
  • 마티스는 색으로 감정을 설계하는 화가였다.
  • 강렬한 장식 대신 절제된 톤을 택한 이 작품은, 전쟁기 유럽의 분위기를 은은하게 반영한다.
  • 커피는 여기서 ‘사교의 상징’이 아니라, 혼자만의 사색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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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 – 《Martinson Coffee》
카페인을 예술로 인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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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 Martinson Coffee, 1962. Christie’s.
 
이제 카페를 벗어나, 마트의 진열대로 가볼까요? 반짝이는 캔 하나. 굵은 로고, 강렬한 색, 반복되는 이미지. 이건 더 이상 ‘풍경’이 아니라 브랜드 그 자체입니다.
 
앤디 워홀의 《Martinson Coffee》는 1960년대 미국 소비문화를 그대로 끌어온 작품이에요. 워홀은 광고에서 쓰이던 실크스크린 기법을 차용해, 대량생산 이미지의 감각을 회화로 옮겼습니다.
 
마티슨 커피 캔은 당시 뉴욕의 대표적인 커피 브랜드였어요. 밝은 색과 또렷한 레터링은, 식료품을 하나의 아이콘으로 만듭니다. 🥫
 
  • 반복되는 캔 이미지
  • 평면적인 색면
  • 감정 없는 인쇄 같은 표면
 
이건 “맛있어 보이는 커피”를 그린 그림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사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이에요. 20세기 중반, 커피는 더 이상 귀족들의 사치품이 아니었습니다. 산업화, 글로벌 무역, 슈퍼마켓의 확산으로 거의 모든 가정에 놓이게 됐죠. 그래서 워홀의 선택은 의미심장해요. 가장 일상적인 것, 가장 흔한 것. 그걸 예술의 중심에 올려놓았으니까요.
 
미국에서 “Cup of coffee” 대신 친근하게  “Cup of Joe.”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표현은 바로 이 커피 회사 조 마틴슨(Joe Martinson)에서 비롯됐죠. 이쯤 되면 이 커피 브랜드는 하나의 정체성이 됩니다. 브랜드가 우리의 일상 언어까지 바꾸어 놓았으니까요.
👀 아만보 타임
  • 워홀은 커피를 통해 ‘취향’이 아니라 ‘소비 구조’를 보여줬다.
  • 반복과 인쇄 기법은 대량생산 시대의 감각을 그대로 드러낸다.
  • 워홀을 통해 커피는 더 이상 사교나 고독의 상징이 아니라, 자본주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다.
같은 커피라도, 세잔에게는 기하학적 실험이었고, 마티스에게는 사색의 순간이었고,  워홀에게는 브랜드와 자본의 얼굴이었어요.
 
이번 설 연휴, 카페 대신 편의점에서 캔커피를 들고 있다면? 그 순간도 이미 하나의 팝아트 장면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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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데이터가 말해준 강원 대표 문화공간
하슬라아트월드
 
Peter Paul Rubens, Romulus and Remus, 1615, Capitoline Museums, Rome, Italy.
 
최근 발표된 〈검색량으로 본 박물관·미술관 관심도 TOP20〉 분석 결과에서 강원도에서는 뮤지엄산하슬라아트월드, 단 두 곳만이 순위에 이름을 올렸어요. (데이터 출처 : 데일리아트)
 
이 두 공간이 순위에 오른 이유는 분명해요. 사람들이 찾고 있는 문화공간의 기준이 ‘어떤 전시를 보느냐’에서 ‘어떤 하루를 보낼 수 있느냐’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이동 자체가 하나의 결심이 되는 강원 지역에서는 전시 하나를 보고 돌아오는 방식보다, 하루 혹은 반나절의 동선 전체가 경험으로 이어지는 목적형 문화공간이 검색과 선택의 기준이 되고 있다고 해요.
 
그중 하나가 바로, 동해바다와 예술이 만나는 강릉의 대표 복합예술공간 하슬라아트월드입니다.
 
하슬라아트월드는 바다를 따라 걷는 3만 3천 평 규모의 야외 조각공원, 테마별로 구성된 실내 현대미술관, 그리고 카페·레스토랑·숙박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 공간입니다. 전시 관람에 그치기보다, 머무는 시간 전체가 하나의 경험으로 설계되어 있어요.
 
특히 바다를 액자처럼 담아내는 원형 포토존은 하슬라아트월드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장면으로, 세대와 취향을 가리지 않고 많은 방문객들이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추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걷고, 쉬고, 바라보며 자연과 예술을 함께 감각할 수 있는 산책형 예술 공간이라는 점이 특징이죠.
 
이번 검색량 분석은 단순한 인기 순위가 아니라, 지금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문화공간을 선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볼 수 있어요.
 
강릉에 간다면, 꼭 한 번쯤 들러보는 곳.
하슬라아트월드가 이번 ‘검색량 TOP20’에 이름을 올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공간 정보]
하슬라아트월드(@haslla_official)
🕐 9~18시 (연중무휴)
📍 강원 강릉시 강동면 율곡로 1441
🎟️ 티켓 구매 후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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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영감들을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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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 천중로 65
서울, 대한민국, 0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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